컴퓨터의 아버지와 첫 프로그래머의 만남
컴퓨터의 아버지와 첫 프로그래머의 만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찰스 배비지와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 개인적으로는 제 직업, 프로그래머로서의 길을 열어주신 고마우신 분들이자,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 그것도 아주 혁명적으로 인류의 삶을 바꿔주신 분들입니다. 그럼 이 분들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컴퓨터의 아버지 : 찰스 배비지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베비지(Charles Babbage)는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그는 1791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찰스 베비지는 기계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를 계산하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은 모든 계산을 손으로 했는데, 이게 참 번거롭고 실수도 많았답니다. 그래서 찰스 베비지는 "이런 번거로움을 없앨 방법이 없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베비지는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고민하며 마침내 '차분기'라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중 하나는 1822년에 설계한 차분기입니다. 우리말로 들으면 도대체 차분기가 무슨 뜻인지 다가오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영어로 보면 쉬워집니다. 영어로 Difference Engine이라고 하니 왜 차분기라고 했는지 금방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 차분기는 아주 복잡한 계산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 만들기에 이 기계는 너무 복잡하고 비싸서 완성하기 어려웠습니다. 찰스 베비지는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해석기관'이라는 또 다른 기계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계는 지금의 컴퓨터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입니다.
찰스 베비지는 이 해석기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답니다. 해석기관은 현대 컴퓨터의 기본 구조와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로그램 가능하고 다양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비록 해석기관도 완성되지 않았지만, 베비지의 설계는 이후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20세기 중반에 전자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실현되었고, 그는 현대 컴퓨터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찰스 베비지가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 힘으로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를 이해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찰스 베비지가 만난 사람이 바로 아다 러브레이스였습니다.
첫 프로그래머 : 에이다 러브레이스
첫 프로그래머가 누구일까요?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로,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배비지의 해석 기관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최초의 알고리즘을 작성하였습니다. 제 직업이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이 분은 저의 영웅이자 스승님입니다. 이제 그 영웅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1815년 영국에서 그녀는 그 유명한 시인 바이런의 딸로 태어났지만, 수학과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이다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앤 이사벨라 밀뱅크의 교육을 통해 수학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숫자와 기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답니다.
에이다는 이처럼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17세에 메리 서머빌을 만나 수학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열정과 재능을 꽃피울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해석기관’을 완성하고자 목이 말라있던 찰스 베비지와의 역사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역사적 만남
역사적 만남, 어쩌면 열정적인 두 천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1833년 어느 날, 에이다는 우연히 찰스 베비지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찰스 베비지가 자신의 기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에이다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해! 나도 이런 기계를 이해하고 싶어!"라고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에이다는 17세였고, 베비지는 40대 중반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즉각적으로 지적인 교류를 시작했으며, 에이다는 베비지의 해석기관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베비지는 에이다의 수학적 재능과 통찰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녀에게 해석기관의 설계와 작동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에이다는 베비지의 기계가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에이다는 베비지의 해석기관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1842년, 에이다는 루이지 메나브레아의 논문을 번역하면서 자신의 주석을 추가하였고, 이는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주석은 해석기관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최초의 컴퓨터 알고리즘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베비지와 에이다의 협력은 현대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놓았고, 그들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기계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제안한 개념과 아이디어는 이후 컴퓨터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역사적 만남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되며, 두 사람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경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래머로서 그들의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 제 경험에 비추어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제가 하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혼자 아무리 똑똑해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반드시 팀원들과 함께 협력해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 주고 도와줘야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협력과 지지가 없다면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위 두 사람처럼 대단한 재능이나 열정이 아니더라도, 항상 모든 팀원들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했다는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컴퓨터>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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